2. 한국이 옛날부터 다케시마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 기 존 역사 자료 를 보면 신라시대 이후 울릉도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명확하며,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관측이 가능한 독도를 인식할 수 없었다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천 몇백년 가까이 맹인이었다는 말이 된다. 이 외에 1454년에 편찬된 세종실록 지리지를 보면 '于山(독도)과 무릉(울릉)의 二島가 縣(울진현)正東의 바다 가운데 있다. 二島는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며 청명하면 바라볼 수 있다.' 라는 기록이 있으며, 일본측이 제시한 자료와 같이 1531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두개의 섬이 이 지도에 보이며 이는 지도 제작상의 미숙으로 지적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우산도(독도)가 조선의 영토였음을 증명하는데는 아무런 하자도 없다고 판단되어진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많은 이들이 그리 생각한다.)



3~5. 임진왜란(1592~1598)을 전후로 우리나라는 울릉도 및 독도를 공도정책의 일환으로서 백성들을 다른곳으로 이주시키고 울릉도 및 독도에는 백성들이 살 수 없도록 하는 정책을 펼쳤었다. 여기서 공도 정책이란, 백성의 안전 혹은 외국에 의해서 침략에 이용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목적으로 국방상의 필요에 의해 변방지역에 흔히 실시하는 정책이었다. 따라서 공도정책 그 자체가 곧 영유권의 실현행위 이며, 국가주권의 발현인 실효적 지배의 한형태일뿐, 영유권 방기의사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공도정책 하에서도 장기적으로 관직자를 파견하여 통치권을 행사하였음은 그 단적인 증거로서 실효적 지배가 결코 방기, 단절된 적은 없었다는것을 증명하여준다. 또한, '도해면허'가 어떤것인지에 대해서 알면 3번의 주장은 오히려 일본이 지배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근거가 된다. 자국민이 자국의 영해 내에서 어업을 종사하는데 어떤 면허가 필요하겠는가? 오야 진키치 라는 사람은 죽도(울릉도) 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었음을 인지하고 외국으로 넘어갔을때 월경죄로 처벌받지 않기 위한 면허 라는것이 일반적인 이론이다. 또한 일본은 2004년에 '송도(독도)도해면허' 를 주장했었는다가 이번 2008년판에는 빼버렸는데, 이또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이때 포기한것으로 볼 수 있는 자료로서 조선 국교 제시 말탐서를 들 수 있다. 메이지유신 직후 1869년 12월 일본 외무성과 태정관(총리대신부)은 조선사정을 내탐하기 위해 佐田白芽등을 파견하면서 조사사항 속에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가 조선 부속으로 되어있는 시말을 넣어 조사하여오라' 라며 지시했다. 또한 1876 년 일본 도근현(島根縣)은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를 자기 현(縣) 지도(地圖)와 지적조사(地籍調査)에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해 내무성(內務省)에 질의하였고, 이에 대해 내무성은 "이 문제는 이미 원록12년 (1699년)에 끝난 것으로 죽도와 송도는 조선영토이므로 일본은 관계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일본지도와 지적조사 에서 빼기로 결정하였음 또한 내무성은 이를 太政官에게도 질의하였는데, 太政官 역시 ′죽도外 一島(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지령문을 1870년 3월20일 결정하였다. 안용복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차원이 아닌 일개 백성이 일으킨 사건이고, 또한 이 사건은 각 국가별로 해석이 다른듯 하다. 그러나, 이사건을 말미암아 발효된 1699년의 외교문서의 교환으로 종결되어졌다는것은 흔들릴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6. 일본 정부의 독도의 시마네현 편입 (1905)
 - 대한제국 칙령 제 41호(1900년 10월 25일)2조 를 보면, 울도군수의 관할구역을 ′울릉 전도(全島)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할 사'로 여기서 죽도는 울릉도 바로 옆의 바위섬 죽서도를 지칭하며, 석도는 독도를 가리킨다. 석도가 독도를 지칭하는것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는데, 이는 당시 울릉도 주민의 다수가 전라도 출신 어민들이었고, 전라도 방언으로 '돌(石)'을 '독' 이라 하였음을 미루어 표기할때 독도(돌섬)을 의역하여 석도로 표기했지만, 당시 울릉도 주민 사이에서는 음을 취하여 독도로 표기하기도 하여 석도와 독도가 병용되고 있었다. 이후, 1904년 러일전쟁 직후 도근현에 거주하는 나카이라는 어업가가 독도에서 물개등의 어로 독점권을 한국정부로부터 얻기 위해 일본 농상무성에 이를 교섭해주도록 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 해군성 수로부장이 나카이를 불러 독도는 무주지라 단정하고 한국정부에 대하원(貸下願) 을 낼 것이 아니라 일본정부에 신청할 것을 종용했다. 일본 해군이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러일전쟁으로 일본군이 서울에 주둔하고 있는 기회를 독도를 침탈하여 해군 감시망루를 설치하려고 했던것이라 볼 수 있다. 이후 일본정부는 1905년 1월 28일 내각회의에서 나카이의 청원서를 승인하는 형식으로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하는 각의결정을 내렸고, 1905년 2월 22일 현고시 제 40호로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하였다. 그러나, 위의 주장과 같이 독도가 일본의 영토였다면 어째서 이러한 영토편입 조취가 필요했겠는가? 이는, 독도가 이전에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선점의 의사는 대외적으로 표시됨을 요하나 일본정부는 이를 대외적으로 표시한 바 없다. 그리고, 1904년 제1차 한일협약에 의해 고문정치가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한국의 자주권은 일본의 군국주의에 의해서 짓밟혀지고 있었다는것을 보아, 1905년의 독도의 일본 편입은 일본에 의한 강제편입으로 보는것이 합당할것이다.





7~8. 연합국최고사령부 SCAPIN(연합국최고사령부 지령) 제677호 및 제1033호 : 1946. 1.29 SCAPIN 제677호제3항에서 일본 영토에서 제외되는 섬들의 그룹으로서 울릉도. 독도. 제주도를 들었다. 연합국최고사령부는 SCAPIN 제677호에 의해 1946. 1.29 독도를 주한 미군정에 이관하였고, 1948. 8.15 대한민국이 수립되자 자동으로 독도를 포함한모든 영토를 반환 받은 것이다. 연 합국최고사령부는 1946. 6.22 SCAPIN 제1033호에 일본인의 어업 및 포경업의 허가구역을 설정하여 일본인의 선박 및 승무원은 금후 독도와 독도의 12해리 이내 수역에 접근하지 못한다고 지령하였는데, 이것은 독도가 한국영토이므로 일본의 어부와 선박들은 접근하지 못한다고 선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독도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하지만, 한일어업협정(1965년 6월)과 신한일어업협정(1998년 11월) 두번에 걸쳐 우리나라는 경제적, 외교적 이익을 위해 동해의 기득권을 양보해왔다. 이번 독도 영유권 주장에는 어떤것을 노리고 있을까? 최종적으로는 독도의 영유권이라지만, 내 생각에는 독도 주변의 해양자원이 아닐까 싶다. 어떤 학자는 일본간의 화해를 종용하면서 동해의 자원개발권을 공유하자. 라고 주장한다. 이것이야 말로 일본의 최종적 목표가 아닐까 싶다. 독도 영유권을 빼앗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포기 하지 않는 이상 무력충돌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 제2차대전 패전국으로서 다시한번 전쟁을 일으킨다면 전 세계에 일본의 국제적 지위는 엄청나게 약해질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지금과 같은 국제 경쟁구도에서 전쟁을 일으킨다면 다시는 한국과 중국과의 공조는 불가능 할것이며, 악화되어가고 있는 한국과 중국의 공조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줄것이다. 이러한 역효과를 감안하면 전쟁보다는 평화적 협정을 통한 최대한의 이익을 도모할 것이며 이 점이야 말로 한국 정부가 노려야 할 곳이라 생각된다.
남북 아메리카, EU, 중동지방의 산유국 밴드. 이렇게 세계는 섹터화 되어가고 있는 지금, 극동아시아 지방도 어떻게든 협력을 해야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것이라 생각된다. 이를 결정적으로 막고 있는것이 일본의 과거의 잔재이다. 물론 무시무시한 극동아시아 삼국의 공조를 막기위한 미국의 공작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나아가야 할것인지는 한중일 삼국의 위정자들의 몫일것이다. 물론, 북한문제도 포함해서 말이다.


참조 사이트 :
http://www.mofa.go.jp/mofaj/
http://www.mofat.go.kr/main/index.jsp
http://cafe.naver.com/heykorean
http://www.dokdo.go.kr/
http://www.cybertokdo.com/new-design/html/cybertokdo.html
http://www.dokdocenter.org/
http://dokdo.kcg.go.kr/



If you want to see this issues in english, you can download this. (It's only discussed from Japan.)

- 위 글은 티스토리 이사작업으로 이글루스에서 티스토리로 옮겨서 포스팅합니다. 원문 작성일 : 08, 12, 17
- 최근 독도문제가 불거지어 다시 한 번 독도에 대해 생각해보고저 포스팅 일자를 수정합니다. 기존 포스팅 : 09, 07, 17
- http://www.kr.emb-japan.go.jp/index.htm 11, 08, 02 또 다시 방위백서에서 독도가 자기땅이라 주장하는 일본정부의 행색을 보고 다시 이 포스트를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끔 올려놓습니다. 수년전에 작성했던 자료이기에 지금의 논점과는 조금 다른 부분도 있지만, 충분히 참조가 가능하리라 판단되는군요.


대한민국 정부의 독도에 대한 기본 입장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정부의 입장은 너무나도 확고하다. 독도는 지리적 · 역사적 · 국제법적 근거에 따른 명백한 우리 고유영토이다.

獨島(トクド, 日本で言う竹島)が我が国の領土であるという政府の立場はたいへん確固たるものである。獨島は地理的、歴史的かつ国際法的根拠から明白に大韓民国固有の領土である。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is adamant in its position that Dokdo is within Korean territory. The fact that Dokdo is an integral part of Korean territory is irrefutable in every aspect; geographically, historically and under international law.

지리적으로 독도는 우리 동해상에 울릉도로부터 87.4km 떨어져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일찍이 조선 초기에 관찬된『세종실록』지리지(1432년)에서는 “우산(독도)·무릉(울릉)…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풍일이 청명하면 바라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를 증명하듯, 울릉도에서 날씨가 맑은 날에만 육안으로 보이는 섬은 독도가 유일하며, 울릉도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

鬱陵島から87.4km離れている獨島は、東海上の美しい島 である。かつて朝鮮初期に官撰された『世宗実録』地理志(1432年)には、「于山(獨島)・武陵(鬱陵)…二つの島は互いにそれほど離れておらず、天気 のいい日には眺めることができる」と書いてある。それを裏付けるように、鬱陵島から天気のいい日にしか肉眼で見られない島は、獨島が唯一であり、鬱陵島の 住民たちは自然に獨島が鬱陵島に属すると認識していた。

Geographically, Dokdo, the easternmost islands of Korea, are 87.4 km southeast of Ulleungdo in the East Sea. According to Sejong sillok jiriji (世宗實錄 地理志, Geographical Appendix to the Veritable Records of King Sejong, 1432), compiled on the instruction of the King in the early Joseon period (1392-1897), Usan (Dokdo) and Mureung (Ulleungdo) are not far apart and are visible from each other on a clear day. As if to prove this statement, Dokdo is indeed visible with the naked eye from Ulleungdo in clean weather. It is only natural that the residents in Ulleungdo have long since recognized Dokdo as islands belonging to Ulleungdo.

자료1. 울릉도에서 바라 본 독도, 鬱陵島から見た獨島資, Dokdo seen from Ulleungdo



자료2.『세종실록』 지리지(1432), 규장각 소장, 『世宗実録』地理志(1432)、奎章閣所蔵, Sejong sillok jiriji (GeographicalAppendix to the Veritable Records ofKing Sejong, 1432) is kept in the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최근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울릉도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6세기 초엽(512년) 신라가 우산국을 복속시키면서부터였다. 이 우산국의 판도를 『세종실록』 지리지(1432년)에서 무릉도(울릉도)와 우산도(독도)라고 하였는데, 그 뒤의 주요 관찬문헌인 『고려사』지리지(1451년),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동국문헌비고』(1770년), 『만기요람』(1808년), 『증보문헌비고』(1908년) 등에도 독도의 옛 지명인 우산도를 적고 있어, 그 지명이 20세기 초엽까지 계속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독도는 지속적으로 우리 영토에 속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最近の調査によると、鬱陵島には先史時代から人が暮していた可能性 が高まっているが、文献に記載されたのは6世紀初頭(512年)に新羅が 于山国を服属させたときからである。『世宗実録』地理志(1432年)によると、この于山国の領土は武陵島(鬱陵島)と于山島(獨島)になっており、その 後の主要官撰文献である『高麗史』地理志(1451年)、『新増東国與資料3. 光武4年「勅令第41号」(1900)、奎章閣所蔵地勝覧』(1530年)、『東国文献備考』(1770年)、『萬機要覧』(1808年)、『増補文献備 考』(1908年)などにも、獨島の古地名である于山島が 記されてあることからその地名が20世紀初頭まで継がれたことがわかる。このようなことから、獨島は持続的に我が国の領土であったことが 明確にわかる。

Moreover, findings from recent research give weight to the high likelihood that people lived in Ulleungdo since the rehistoric era. However, it was not until when the Silla Kingdom (57 BCE-935 CE) annexed Usanguk, a small state comprised of Ulleungdo and Dokdo in year 512, that Dokdo started appearing in official documents. For example, Sejong sillok jiriji referred to Ulleungdon and Dokdo as Mureungdo and Usando, respectively. Other documents include Goryeosa (高麗史, History of Goryeo, 1451), Sinjeung dongguk yeoji seungnam (新增東國輿地勝覽, A Revised Edition of the ugmented Survey of the Geography of Korea, 1530), Dongguk munheon bigo (東國文獻備考, Reference Compilation of Documents on Korea, 1770), Man-gi yoram (萬機要覽, literally the Book of Ten Thousand Techniques of Governance but more commonly known as the Manual of State Affairs for the Monarch, 1808) and Jeungbo munheon bigo (增補文獻備考, Revised and Enlarged Edition of the Reference Compilation of Documents on Korea, 1908). These documents show that Usando was an old name for Dokdo, and was used to refer to Dokdo for at least several centuries until the early 20th century. Thus, it is evident that Dokdo was continuously a distinct part of Korean territory for an extended length of time.

조 선 숙종대 안용복의 일본 피랍(1693년)으로 촉발된 조선과 일본간의 영유권 교섭결과, 울릉도 도해금지령(1696년)이 내려짐으로써 독도 소속문제가 매듭지어졌다. 또한 일본 메이지(明治)시대에 들어와서 일본의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太政官)에서는 시마네현(島根縣)의 지적(地籍)편찬과 관련하여 내무성(內務省)의 건의를 받아 죽도(竹島) 외 일도(一島), 즉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 관계없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지령(1877년)을 내렸다. 이러한 것들은 일본에서도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들이다.

朝鮮の粛宗時代に安龍福が日本に拉致(1693年)された事件により朝鮮と日本との間で領有権交渉が行われた結果、 1696年に幕府が日本人の鬱陵島への渡航を禁止することで獨島の帰属問題が決着した。また明治時代に、最高行政機関であった太政官は島根県の地籍編纂に 関する内務省からの稟議をもとに、竹島外一島、即ち鬱陵島と獨島が日本とは関係がないことを心得るよう指令(1877年)を発した。これらは、獨島が日本 の領土でないことを日本が認めた明白な証拠である。

During the reign of King Sukjong (1674-1720) of Joseon, as a result of diplomatic negotiations that had been prompted between Joseon and Japan when An Yong-bok was captured by the Japanese fishermen in 1693, the issue of ownership over Ulleungdo and Dokdo was concluded with Japan issuing a directive in year 1696, prohibiting all Japanese from making passage to Ulleungdo.

During the Meiji period (1868–1912), the Daijokan (太政官, Grand Council of State), then Japan’s highest decision-making body, received a note of inquiry from the Ministry of Home Affairs, about the compilation of land registers for the Shimane Prefecture. Following deliberations, the Grand Council of State issued a directive in year 1877 stating, “Regarding
Takeshima (Ulleungdo) and another island (Dokdo), Japan has nothing to do with them.” All this is clear evidence that even in Japan, Dokdo was not considered Japanese territory.

자료3. 광무4년「칙령 제41호」(1900), 규장각 소장, 光武4年「勅令第41号」(1900)、奎章閣所蔵 Korea’s Imperial Edict No. 41, issued in 1900, the fourth year of Gwangmu, is kept in the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20세기에 들어와 대한제국은 광무 4년「칙령 제41호」(1900년)로 울도군 관할구역에 석도(石島), 즉 독도를 포함시키는 행정조치를 통해 이 섬이 우리 영토임을 확고히 하였다. 1906년 울도(울릉도) 군수 심흥택은 일본 시마네현 관민으로 구성된 조사단으로부터 독도가 일본령으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즉시 강원도 관찰사에게 “본군(本郡) 소속 독도가…”라고 하면서 보고서를 올렸다. 이는 「칙령 제41호」(1900년)에 근거하여 독도를 정확하게 통치의 범위내로 인식하며 관리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한편, 이 보고를 받은 당시 국가최고기관인 의정부에서는 일본의 독도 영토 편입이 ‘사실 무근’이므로 재조사하라는 「지령 제3호」(1906년)를 내림으로써, 당시 대한제국이 독도를 영토로서 확고하게 인식하여 통치하고 있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20世紀に入って大韓帝国は、光武4年(1900年)「勅令第41号」により、石島、即ち獨島を鬱陵郡の管轄下におく行政措置 を通じてこの島が我が 国の領土であることを明確にした。1906年、沈興澤鬱島(鬱陵島)郡守は 島根県の官民で構成された調査団から、獨島が日本に領土編入されたこ 資料4.「江原道観察使署理春川郡守李明來報告書号外」(1906)及び議政府参政大臣「指令第3号」(1906)、奎章閣所蔵とを知り、直ちに江原道観 察使に「本郡所属獨島が…」と上申書で報告した。これは大韓帝国が「勅令第41号」(1900年)に基いて獨島を正確に統治範囲内として認識・管理してい たことを示す証拠である。一方、その報告を受けた当時国家最高機関であった議政府は、日本による獨島の領土編入は「事実無根」であるため再調査を命じる 「指令第3号」(1906年)を発することで大韓帝国が獨島を領土として確かに認識・統治していたことを示している。

In 1900, the fourth year of Gwangmu (Glorious Valor), under the reign name of King Kojong (1863-1907), the Great Han Empire of Korea(1897-1910) issued Imperial Edict 41 placing Seokdo (Dokdo) under the jurisdiction of Uldo-gun (Ulleungdo), thus reaffirming the fact that the islands belonged to Korea. In 1906, immediately after being notified that the islands had been incorporated to Japanese territory from a Japanese survey team comprised of officials and civilians from the Shimane
Prefecture, Sim Heung-taek, the County Chief of Uldo-gun of Korea, submitted a report to the Governor of the Gangwon-do province stating that “Dokdo, which is under the jurisdiction of our county….” The submission of such a report is clear evidence that the County Chief of Uldo-gun recognized Dokdo as being within the scope of his administration pursuant
to Imperial Edict No. 41. In 1906, the Uijeongbu (議政府, the State Council of the Great Han Empire), having received the report mentioned above, issued Directive No.3, arguing that “…that there was no basis for such an act” to instruct a
reexamination of Japan’s act of incorporating Dokdo as its territory. This reaffirms that the Great Han Empire was governing Dokdo clearly maintaing sovereignty over the islands.

자료4. 「강원도관찰사서리 춘천군수 이명래 보고서호외」(1906) 및 의정부 참정대신 「지령 제3호」(1906), 규장각 소장, 「江原道観察使署理春川郡守李明來報告書号外」(1906) 及び議政府参政大臣「指令第3号」(1906)、奎章閣所蔵, A special report of the county chief of Chuncheon-gun, Yi Myeong-rae, then acting Governor of the province of Gangwon-do (right) and State Council Directive No. 3 (left) issued in 1906 by the then Deputy Prime Minister, is kept in the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890년대부터 시작된 동북아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 과정에서 발생한 러·일전쟁(1904-1905) 시기에 무주지 선점 법리에 근거하여 「시마네현 고시 제40호」(1905)로 독도를 침탈했다. 이러한 일본의 행위는 고대부터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확립하여 온 독도에 대한 확고한 영유권을 침해하였다는 점에서,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불법이며, 국제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는 행위이다.

それにもかかわらず日本は、1890年代から始まった東北アジア に対する帝国主義的侵略の過程で発生した日露戦争(1904~1905年)の間、無主地の先占の法理に基いて「島根県告示第40号」(1905年)によ り、獨島を侵奪した。そのような日本の行為は、古代から大韓帝国に至るまで長期に亘って確立されていた獨島に対する確固たる領有権への侵害に当ることか ら、如何なる理由があっても正当化できない不法で、尚且つ国際法的にも効力のない行為である。

Nevertheless, Japan, in the midst of the Russo-Japanese War (1904-1905), which had been triggered by Japan’s imperialistic invasion scheme toward Northeast Asia since the 1890s, disseized Dokdo and incorporated the islands into the Shimane Prefecture by issuing the Shimane Prefecture Public Notice No. 40(1905). Japan’s annexation of Dokdo constituted a violation of international law, and cannot be justified under any circumstances, for it is a clear infringement on the undeniable sovereignty of Korea over the islands from ancient times to the recent Great Han Empire. More importantly, Japan’s actions carry no legal validity under international law.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일본은 폭력과 탐욕에 의해 약취한 모든 지역으로부터 축출되어야 한다는 카이로선언(1943)에 따라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는 당연히 대한민국 영토가 되었다. 아울러 연합국의 전시점령 통치시기에도 SCAPIN 제677호에 따라 독도는 일본의 통치·행정 범위에서 제외된 바 있으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은 이러한 사항을 재확인하였다. 이후 우리는 현재까지 독도를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독도에 대하여 지리적,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확립된 우리의 영유권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단 없이 이어지고 있다.

1945年、第2次世界大戦の終わりに伴って、日本は暴力と貪欲によって略取した全ての地域か ら追い出されるべきであるというカイロ宣言(1943年)により、我が国固有の領土である獨島は、然るが故に大韓民国の領土となった。それに付け加えて、 連合国による占領統治期間中にも「連合国総司令部覚書(SCAPIN)第677号」により、獨島は日本の統治・行政の範囲から除外された経緯もあり、その ことは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1951年)でも再確認された。その後、我が国は現在に至るまで獨島を実効支配してきた。このような事実に照らし合わせ て、獨島に対して地理的、歴史的かつ国際法的に確立された我が国の領有権は、現在まで中断されることなく継がれてきた。

Korea was annexed to Japan in 1910 and the colonial rule ended in 1945 with Japan’s defeat in World War II. In 1943, while the war was still being fought, the three Allied Powers—the United States, Britain and China—issued the Cairo Declaration, vowing that Japan would “…be expelled from all other territories which she has taken by violence and greed.” In 1945, when Korea regained its independence, Dokdo, too, was returned to Korea as a matter of course. Moreover, while the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USAMGIK) temporarily ruled the country after libration, Dokdo was excluded from those territory controlled and administered by Japan in accordance with the Supreme Command for
Allied Powers Instruction (SCAPIN) No. 677. Later, Dokdo’s exclusion from Japan’s territory was reaffirmed by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better known as the San Francisco Treaty, of September 8, 1951. In the years following Korea’s liberation from Japan and to this day, Dokdo has been under the effective control of Korea. In this light, it is clear that
sovereignty over Dokdo has always been with Korea.

대 한민국 정부는 우리의 고유영토인 독도에 대해 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느 국가와의 외교 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향후 정부는 독도에 대한 대한민국의 영유권을 부정하는 모든 주장에 대해 단호하고 엄중히 대응하면서도, 국제사회에서 납득할 수 있는 냉철하고 효과적인 방안에 의존하는 “차분하고 단호한 외교” 를 전개해 나갈 것이다.

大 韓民国政府は、我が国固有の領土である獨島を巡る紛争は存在せず、どの国とも外交交渉又は司法的な解決の対象にならないという確固たる立場を有している。 今後、政府は我が国の獨島の領有権を否定するあらゆる主張に対して断固かつ厳重に対応するとともに、国際社会に納得してもらえる冷徹で効果的な方策に頼る 「冷静かつ断固たる外交」を展開していく方針である。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s position is steady that Dokdo has inherently been Korean territory. The Government does not regard the Dokdo issue as a matter to be dealt with through diplomatic negotiations or judicial settlement. The Government will deal firmly and resolutely with any claims denying Korean sovereignty over the islands.
Also, the Government will take a firm and coolheaded approach, based on objective and effective measures which will be more convincing to the international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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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www.mofat.go.kr/press/hotissue/dokdo/index.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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